치정 멜로는 뻔하다. 그러나 잘만 만들면 흡인력이 있다. 제도의 벽을 사이에 둔 남녀의 애증이야말로, TV 막장 드라마조차 선호하는 동서고금의 치명적 소재이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치정 멜로의 유혹에 넘어가면서도 뻔한 상투성을 넘어서야 하는 숙제를 동시에 안게 된다. 거기에서 성공하게 되면, 이를테면 <색, 계>처럼 걸작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게 되면 장혁 주연의 <가시>처럼 범작이나 졸작 대열에 합류해 슬쩍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정우성이 주연한 <마담 뺑덕>(10월 2일 개봉)은 심청전이라는 고전을 통해 상투성 회피 전략을 구사한다. 심청전이 심청을 중심에 둔 서사라면, <마담 뺑덕>은 그 아버지 심학규와 심청의 계모 뺑덕 어멈의 서사를 끄집어 올려, 치정 멜로를 완성한다. 뺑덕은 순수한 처녀 덕이(이솜)로 각색되고, 이제 그녀는 심학규(정우성)의 비겁한 사랑에 의해 처절하게 붕괴된 뒤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난다. 심청전이 말하지 않은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이다. 여기까진 참신하다.
그런데, 이 전략은 뒤로 가면서 뻔한 속살을 드러내고 만다. 심청전의 '재해석'이 아니라 '재활용'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의 인물 구도와 기둥 설정을 가져와 현대적 치정 멜로로 탈바꿈 시킨 게 아니라, 치정 멜로의 정서적 흐름을 심청전의 틀에 꿰어 맞춘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불쑥 불쑥 도약을 일삼고, 후반부로 가면서 급격히 농담이 된다.
정우성과 이솜의 케미컬은, 이를테면 <가시>의 장혁과 조보아, <은교>의 박해일과 김고은의 합을 넘어서지 못한다. 잘 빠진 남녀가 벌거벗고 뒹구는 장면만으로는 왜 하필 심청전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기 버겁다. 기껏 고전을 뒤집어 놓고는 고전에서 멀어질까 두려워하는 <마담 뺑덕>에는 춘향전을 방자전으로 슬쩍 바꿔 놓는 김대우의 도발적 치기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치정 멜로와 심청전은 처음부터 맞지 않는 조합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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