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니 <비긴 어게인>이 역대 다양성 영화 1위를 했다는 소식이 나오는군요. 다양성 영화 1위라...이 말 참 웃기지요? 도대체 뭐가 다양성 영화일까요? 영화 자체가, 하나하나의 영화가 다양성 영화가 아닌가요? 만약 다양성 영화가 따로 있다면, 다른 영화들은 비다양성 영화인가요?
사실 이 분류 자체가 참 웃깁니다. 이건 영화진흥위원회가 만든 분류 방식인데, 한국독립영화와 해외 예술영화가 하도 시장에서 홀대를 받기 때문에 그들을 따로 분리해서 순위를 매기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안그래도 잔뜩 양극화되어 있는 영화 시장은 훨씬 더 노골적으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뉘게 됐죠. 다양성 영화로 분류된 영화는 처음부터 마이너리그 영화 태그를 붙이고 시장에 나오는 셈입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뭐가 다양성 영화인지 어떻게 구분하겠습니까?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죠.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배급 유통을 위한 공급자 태그죠. '유기농'이나 '원산지 표시'와 같은 소비자 친화적 태그가 아니라는 얘기죠.
그렇다면 왜 이런 공급자 태그가 생긴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몇 개 안되는 예술영화관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소정의 지원을 받습니다. 대신 정해진 예술영화 쿼터, 이른바 다양성 영화 쿼터를 지켜야 합니다. 영진위가 분류한 다양성 영화들이 최소한의 상영 기회를 보장 받기 위한 제도인 셈입니다. 취지는 참 좋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잘못됐습니다. 다양성 영화가 틀어질 기회를 전체 상영횟수의 천분의 일 빼준다고 다양성이 확보되나요? 오히려 스크린 독과점으로 관객의 선택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겠죠. 상식적으로, 생태계가 불균형 상태에 처하면 포식자의 개체수를 규제하지요. 포식자는 그대로 놔둔채 피식자에게 음식을 제공하기만 하는 건 바보짓이죠. 그건 상식에 속합니다.
그러나 안합니다. 왜 안할까요? 한국의 영화 정책을 담당하는 이들과 정치인들이 '규제'라면 눈이 시뻘겋게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언제나 기업의 영업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수호해주는 첨단 시장주의 국가이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시민의 문화적 풍요로움은 개나 줘 버릴 일입니다.
<비긴 어게인>의 흥행을 '다양성 영화인데 이렇게 잘들었으니 대단하다.' 쪽으로 몰고 가는 건 '다양성 영화는 원래 마이너리그 영화'라는 인식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의 이면에는 씁쓸한 진실이 또 하나 숨어 있습니다. <비긴 어게인>을 빼고 다른 다양성 영화, 아니 마이너리그 영화들은 죄다 망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극히 예외적인 현상을 전체인양 호도할 수는 없습니다. <비긴 어게인>은 다양성 영화라 흥행한 게 아니라, 다양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한 것이며, 무엇보다 그냥 괜찮은 영화라 흥행한 것입니다. 애초부터 이 영화를 다양성 영화로 분류한 것 자체에 실소를 뿜어야 맞는 것입니다. 그만큼 충분히 상업적인 영화도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는 반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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