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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 배케이션 영화를 보고

category 주저리주저리/영화 2014. 12. 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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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치료하는 감독 아오야마 신지
 
 

뛰어난 감독과 배우는 관객을 기대를 부풀게 한다.


 

이런 연유로 새드배케이션이라는 영화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나의 예매 0순위에 올랐다.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전작중에 내가 본 것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뿐이 였지만,


 

감독만의 색다른 느낌과 출중한 배우들의 등장은 충분히 나를 열광케 했다.


 

그리고 나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이 영화와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의 느낌은 ‘가족에 대한 고찰’이 였다.


 

사람은 태어나 많은 사회 집단에 속하게 되고 많은 사람과의 인연을 만들어간다.


 

학창시절에도 배웠던 이 이야기에서 가족이라는 집단은 유일하게 선택의 여부가 주어지지 않는 초기 집단이다.


 

가족은 살아가며 많은 생각을 하고 느끼게 한다.


 

날 때부터 나를 감싸고 있는 가족이란 집단은 평생을 고뇌하게 만드는 곳이다.


 

예전에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신에게 있어 가족이란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에 감독은 “다른 사람들의 보는 눈만 없다면 갖다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답하였다.


 

놀랍도록 솔직한 이 발언에 ‘무슨 가장이 이래?’ 라는 생각을 했지만, 내 가슴 깊은 곳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감독을 향한 것이 아닌 이 말에 공감한 나에게 보내는 조소였다.


 

우리말 중에 ‘애물단지’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애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하고, ‘애물’을 다시 찾아보니 몹시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구는


 

물건이나 사람이라고 했다.


 

애물단지는 끊임없이 애를 태우고 성가시게 군다.


 

나는 가족을 애물단지라고 생각한다.


 

물보다도 진한 피의 관계이지만, 평생 나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느껴지는 이 거추장 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릴적 주정뱅이 아버지와 자신을 버리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후 켄지의 인생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밀항선을 돕는 일을 하던 중 아버지를 잃은 중국인 아이 아츈을 거두게 되고, 아츈은 켄지와 켄지의 친구의


 

여동생이자 정신적 결함을 지니고있는 유리와 함께 살아간다.


 

대리운전을 하던 중 켄지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싱거운 그와 쿨한 그녀의 만남은 곧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리운전으로 모신 고객의 집에서 재혼한 어머니를 만나게 되지만, 그는 일단 발을 돌린다.


 

그 후 찾아간 어머니는 몇 십년만의 재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를 알아보고 그와 유리와

 

아츈과 토끼,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항상 불행하길 빌었던 어머니의 모습은 즐겁고 행복해보인다.


 

이복 형의 등장 이후 끊임없는 반항을 하는 동생의 탈선은 켄지를 긴장하게 만들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켄지에게 기대며 가업을 이어달라며, 너밖에 없다는 말을 하며 켄지를 더욱 의존해 간다.


 

그러던 어느날 중국인들이 들이닥쳐 아츈과 회사직원 한명에게 상처를 입힌후 데려가 버린 후 켄지는 무언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감정을 되 찾은 듯 보인다.


 

근신중이던 동생에게 이 집을 떠나라며 협박을 하고, 가족 모두가 집을 비운 사이에 동생은 유리를 강간하고


 

집을 떠난다. 동생의 가출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다지 감정의 기복이 없어보인다.


 

오히려 이젠 니가 당당히 가업을 이어도 되겠다고 말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켄지는 모두 다 내가 시킨 짓이라며 어머니는 나를 버렸고, 또다시 자식을 버린 여자라고


 

소리친후 집을 나와버린다.


 

켄지는 사랑하는 시나에게 돌아간다.


 

그 후 동생이 켄지를 찾아와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설치지만, 켄지 앞에서는 아직 역부족이 였고,


 

자극 받은 켄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려 동생을 때려죽이게 된다.


 

어머니가 참회의 피눈물을 흘리기를 원했지만,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에도 어머니는 덤덤하다.


 

마냥 담담해 보이는 어머니는 홀로 죽은 아들의 방에 우두커니 앉아 차오르는 눈물을 천장을 바라보며 삼킨다.


 

그 이후 켄지의 여자까지 반갑게 맞이하면서 앞날의 희망과 기쁨을 말하는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한채 홀로 마음을 다스린다.


 

어머니란 존재는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지만, 아무리 관찰해 보아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연약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란 이름의 존재는 인간을 한차원 뛰어넘은 다른 존재인 것만 같다.


 

가족은 나의 어떤 부끄러운 일도 이유를 불문하고 감싸주고, 덮어준다.


 

세상에 환영받지 못하는 나를 최고로 만들어준다.


 

이곳의 회사의 사람들은 각자의 세상에서 은신해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언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그들을 서로 감싸주고 이해하는 이유는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끝난줄 알았던 자신을 받아준 사장은 피를 나눈 가족만큼 소중하고 신과 같이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가족은 말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널 거두어가리.”


 

그 말 한마디에 힘든 인생살이도 위로를 받는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족으로 인한 고통은 피란 관계를 원망하게 하지만,


 

세상에 인정받지 못하는 나를 최후까지 받아주고 책임지는 유일한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고, 그 중에도 어머니이다.


 

사람은 어리석에서 가까이에 있는 가족을 소중함을 모른다.


 

가족을 잃고나서 다시 찾을 수 없음을 깨달았을때에 그제서야 자신의 무지를 한탄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을 접하며 끝 없는 포용력에 대해 깨닫게 되지만, 가까이 있는 이 순간에는 또 잊게 된다.


 

나는 언제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단지 자신의 아이를 갖는 다는 것과는 조금 다름을 느낀다.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알 수 없는 가족에 대하여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말해주었다.


 

내가 본 감독의 전작인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에서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치료할 때 꼭 내가 치료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오야마 신지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나를 치료해 주었다.


 

아오야마 신지 감독은 치료하는 감독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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